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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란국에는 요괴들이 사는 깊은 계곡이 있다.
그 계곡에서부터 들려오는 기묘한 노랫소리의 주인공 소루공주.
왕실 사당 깊은 곳에 유폐된 채 홀로 지내던 그녀는 어느 날, 나라의 영웅 자현과 혼례를 치르게 된다.
자현은 본래 가란 공주를 사모해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길 원했지만, 희란국의 왕 가륜은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오면 부마로 삼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조롱하듯 천덕꾸러기 신세인 귀신 공주와 결혼시킨다.
그에 화풀이하듯 아내를 괄대하는 자현. 그런 냉대에도 불구하고 소루는 남편을 사모하게 되고….
한편, 도성에서는 가슴이 뚫린 채 죽은 참혹한 시체가 연이어 발견되는데….

 

동네 구립 도서관에서 빌렸다.

 
 
희란국 왕의 셋째 아들 신율은 미모는 뛰어났으나 방탕하고 난잡한 생활만 하는 망나니로
결국 왕의 후궁과도 일을 저질러 소루공주를 낳는다.
 
 
"소루 공주가 태어나던 날에 희란국 왕께서 낯을 굳히며 말씀하시기를 왕의 여인이 낳았으되 그 아들의 자식,
이는 패륜의 증거이니 땅에 묻어 마땅하나 내 손에 혈육의 피를 묻히기 꺼리노라.
그것을 가장 천한 종에게 주어 죽지만 않게 하라 하셨소.
그리고 그 천한 딸에게 이름 붙이기를 눈물로 태어나 근심거리일 뿐이니 소루騷(근심거리)淚(눈물)라 하여라!
그리하여 가장 미천하고 미욱한 말더듬이 노비의 손에 양육된 소루 공주"
 
 
저잣거리에서 야담꾼이 들려주는 실화 바탕 소루공주 이야기.
 
 
"시름시름하던 것이 언변을 텄을 즈음에는 헛소리까지 중얼중얼. 빈 허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은 예삿일이고, 허구한 날 귀신들이 자신을 먹으러 온다며 경기를 일으키기까지 해,

그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여겨 모두가 꺼리었지.
그뿐인 줄 아시오? 이 계집은 나무나 풀잎, 짐승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무시무시한 것은 그 조그만 핏덩이가 꽃을 피워라 하면 죽은 나무가 꽃을 피우고, 죽어라 하면 퍼렇던 잡초가 죽어 버리고, 들짐승도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는 게 아니오!"
 
 
소루는 수천 년에 한 번 천인이 인간으로 잘못 태어난다는 천녀였다.
소루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단 걸 몰라 능력을 보였고
안 그래도 주위 사람들이 죽는 판에 이 모습을 보니 사람들은 더 무서워했으며
요괴들만 맛있는 천인...을 잡아먹기 위해 주위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요물 더는 못 견디겠다 하시며 궁전 사당에 가두라, 음식도 물도 주지 말고 굶겨 죽이라 명하셨소. 그리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던 날 밤! 온 천지에 천둥 벼락이 내리치고 하늘은 시커멓게 변하니, 불길한 징조라.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져 왕실 사당이 화염에 휩싸였소이다. 그 불그림자가 마치 요물들이 한데 뒤엉켜 몸부림치는 것처럼 요동하였지! 저 높은 궁성 지붕 위까지 불길이 치솟는 광경이 이 두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오!
온 궁전의 모든 일꾼이 달려들어 물을 부어도 꺼지지 않던 그 불길. 하늘에서 괴이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 뒤에 거짓말처럼 꺼지었는데, 고 숯 더미 속에서 놀랍게도 어린 공주가 살아 있는 게 아니겠소! 열흘 동안 물 한 모금 쌀 한 톨 삼키지 못해 앙상하게 마른 계집아이는 두 눈만 멀고 나머지는 다 멀쩡하였소."
 
 
제대로 봤다.
소루가 약해져야만 잡아먹을 수 있기에 요괴들은 말더듬이 노비부터 소루를 돌보던 사람들을 계속 죽였고
소루의 몸과 마음이 모두 황폐해지자 요괴들이 한꺼번에 노리면서 싸움을 한 것이다.
 
그날부터 계곡에선 기이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소루 공주 먹으면
새 몸 얻어 사람이 될 수 있나니,
희란국 요물들
공주를 두고 싸웠더라
 
그중에서도 가장 추한 요괴가 몰려든 모든 귀물을 집어삼키었는데
배가 가득 차 공주는 먹을 수 없었더라
 
요괴는 결국
공주의 눈만을 빼앗고
멀리 달아났다」
 
 
이게 서장의 내용인데 책을 다 읽고 다시 보니 속뜻은 틀리나 내용은 다 맞다.
야담꾼이 모르는 게 없다.
 
 
살아남은 소루는 신녀들이 사당 안으로 음식이나 소셋물, 의복을 밀어 넣어 줄 뿐 가까이하지 않았고
눈도 잃어 깜깜한 세상에 혼자... 가 아니고 여전히 요괴들과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녀들이 나오라 하기에 이제 왕이 죽이는구나 하고 오히려 안도했으나

알고 보니 자현과 혼례를 치르는 것이었다.
말 많은 요괴들 때문에 상황을 알고 있어 그저 덤덤히 받아 들일뿐인데
wow 자현에게서 빛이 난다!
눈을 잃어 어둠뿐인 세상에서 자현은 태양처럼 빛났고 그와 가까이 있자 요괴들도 오지 못한다.
자현은 오로지 가란 공주를 얻기 위해 힘든 전쟁을 치르고 왔는데 귀신 공주와의 결혼이라
소루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요양을 보내려고 하지만 소루는 자현을 놓을 수 없다.
이제 좀 살 수 있을 것 같아 절박하게 매달리지만 자현은 빨리 답을 주지 않고
소루는 자신의 피로 상처를 치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해서 겨우 집에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안주인 노릇은 기대도 하지 말라는 싹수없는 말과 함께.
 
자현은 천기의 기운을 받아 하늘의 보호를 받는 자라고 하는데
소루가 천녀이나 잘못된 부모를 만나 최악의 상황이 된 것처럼, 천기가 아주 잘못 들어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현이를 얼마나 불렀는지 모른다.
자현아, 너 이가 남아나겠니. 뭐 계속 하는것도 없이 이만 으득으득 물어.
 
소루는 자현의 집의 가장 뒷방에 머물면서 자현의 세력 확장을 위해 자신의 피로 사람들을 치료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손과 팔에 자상이 끊이질 않고 나중에는 자현의 하인들까지 소루를 노려
아무 때나 와서 피를 뽑아 가고 살까지 도려내 간다.
요괴를 무서워했던 소루는 이제 사람이 무섭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소루는 이제 사람의 기척에 놀라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 공포에 휩싸여 살게 된다.
그럼에도 자현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괜찮다 자신을 타이르는 모습에 내가 다 아프고 슬퍼 눈물이 나는데
자현이 ㅅㄲ는 소루를 보면 죄책감이 들려는 그 상황이 싫어서 발길도 들이지 않는다.
 
자현아 너 이건 진짜 좀 맞아야겠다.
너 이 상황이 되도록 진짜 뭐 했냐.
나무위키나 다른 정보가 더 있을까 하고 검색을 했더니
살짝 보이는 다른 리뷰에 '자현이 ㄱㅅㄲ'가 쓰여 있는 걸 보고 사람 마음이 다 똑같구나 했다.
 
소루를 진심으로 위하는 몸종 염이가 못 참고 자현에게 겁을 먹었음에도 이럴 수는 없다고 따지면서
그제야 자현은 상황을 알게 되고 소루를 치료하고 집안을 뒤집어 놓지만 내 마음은 안 뒤집어진다.

요괴 소개나 하자.

 

 

 

 

아귀餓(굶주릴)鬼(귀신)라 불리는 요괴가 있었다.

느끼는 것이라곤 오로지 허기짐뿐이었고

비대하게 살찐 몸뚱이를 출렁이며, 앙상하게 마른 팔다리를 휘청거리며

흙, 돌, 생물, 동족까지도 게걸스레 먹고 또 먹다 보니 어느새 어둠의 가장자리에 도달했다.

처음으로 빛을 보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쫓아가다 계곡에서 나오게 된 그는 한 무리의 인간들을 발견한다.

 

"왜...... 입을 맞추는 거냐."

"그야 사랑하니 입 맞추지요."

"사랑이 무엇이냐."

"사랑이 사랑이지요. 가군, 오늘 이상하십니다. 왜 그런 엉뚱한 질문을 하십니까?"

"사랑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이 가슴속에 있는 것이지요."

"그런가."

 

처음 본 남녀의 모습에 호기심이 생겨 남자를 죽이고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간 아귀는

여자의 말에 손을 뻗어 가슴에서 심장을 꺼낸다.

이것이 사랑이냐고 물어보지만 여자는 당연히 답을 할 수가 없다.

본성대로 먹어보면 알 수 있으려나 뼈와 살까지 모두 으적으적 씹었지만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아귀는 사랑이 대체 뭔지 알기 위해 사람들 속에서 계속 숨어 살았다.

오랜 시간 한 여자의 남편으로, 수년간 어느 사내의 첩으로, 십 년간 한 여인의 아이로

끊임없이 모습과 형태를 바꾸며 묻고 또 물었지만 답은 구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가슴이 따뜻해지고 서로를 귀중히 아끼는 것이라 했는데 그건 또 무언가.

누군가는 격렬하며 뜨거운 감정이라 하는데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헤아릴 수 없는 긴 세월 동안 반복하여 체념이 스며들 즈음 한 노승을 만났다.

 

"나는 알고 싶을 뿐이다!

어찌하여 너희는 입을 맞추느냐. 어찌하여 너희는 얼싸안느냐. 어찌하여 너희는 함께하는 것이냐.

사랑이 대체 무엇이기에!"

"평생을 추구하여도 요괴 너는 그 답에 도달할 수 없다.

오로지 인간만이 사랑을 한다. 그것은 이해를 벗어난 이타利(이로울)他(다를)의 감정.

탐욕에 휩싸여 살육만을 반복해 온 괴물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감정이다. 부질없는 짓 하지 말고 피안의 시계로 되돌아가라!"

 

아귀는 노승의 숨통을 끊고 인겁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이제까지 묻고 관찰하던 것을 그만두고 탐욕을 부리지 않고 살육하지 않으며

그들을 따라 사랑을 흉내 내어 보면 알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백 년 넘게 인간을 관찰하며 사랑이란 것은 대개 강한 것이 약한 것을 돌보는 외형을 취한다는 사실이어서

왜소한 체격에 허름한 옷차림을 한 눈먼 소년을 데려왔다.

인간이 제 어린것에게 하듯이 씻기고, 먹이며 극진히 돌보았다.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자그만 머리통을 쓱쓱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뺨에 입을 맞추어 보기도 했다.

 

소년은 언제부터인가 그를 '아버지'라 부르기 시작했다.

때때로 요괴는 그 사랑이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하였다.

소년이 제게 환하게 웃으며 사랑한다 할 때면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희미하게 꿈뜰거렸다.

요괴는 환희에 차올랐다. 자신이 느끼는 것이 기쁨이라는 것도 모르는 채로 그는 기뻐했다.

무수한 세월 동안 뒤쫓아 온 의문의 실마리를 겨우 붙잡았다.

나는 알고 싶다. 나는 느끼고 싶다.

요괴는 어느새 허기보다 깊어진 열망이 해소되는 순간만을 고대하며, 소년을 더더욱 극진히 보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말하였다.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아버지의 얼굴이 보고 싶어요. 그러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가냘프게 떨리는 목소리에 요괴는 희미한 전율을 느꼈다. 가슴속에 묘한 확신이 들어찼다.

이 소원을 이루어 주면 나는 분명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소년이 저를 올려다보며 기쁨에 찬 눈으로 제게 사랑을 말한다면 이번에야말로 비로소 깨닫게 되리라.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검은 여우 요물에게 가 눈을 고치는 약을 달라하고

검은 여우는 약값으로 노승의 인겁을 달라했다....

예견된 결말로 소년을 눈을 뜨고 추악한 몰골의 아귀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 뒷걸음질 치고

아귀는 멀어지려는 소년을 품에 안고 입을 맞춘다. 사랑의 행위이니까.

그러나 피 웅덩이만이 남았을 뿐. 요괴는 멍하니 부른 배를 움켜쥐었다.

문득,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가 없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요괴는 사랑을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아귀는 지금 도성에서 사람의 심장을 빼먹는 요괴 야토가 되었다.

 

아닌데... 이미 사랑을 했는데.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지만 마음이 아프다.

로맨스 판타지인데 자현이로는 로맨스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요괴의 탄탄한 서사는 재밌어 글이 술술 읽히니 맘 편하게 판타지로만 생각하기로 했다.

 

<2>에서 계속